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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개선생의 파주이야기 <9>  산동에서 본 파주와 교하 3  

입력 : 2018-07-12 11:5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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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개선생의 파주이야기 <9>

 

산동에서 본 파주와 교하 3

 

파주의 핵심은 두 강이 만나는 교하

아름다운 칭다오 해변에서 좋은 벗들과 일요일을 보냈습니다. 바다를 보면서 건너편에 자리잡은 한반도를 생각해보았습니다. 지도를 보면 산동반도는 경기만과 요철을 이루는 형세인 걸 알 수 있습니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혹시 지각변동으로 벌어졌다는 느낌마저 강하게 듭니다.

온통 바위로 이루어진 라오산의 강력한 구심력이 산동반도를 남기고, 한반도는 점차 동해 방향으로 이동한 것 같습니다. 그 사이에 황해가 형성되었습니다. 산동반도와 경기만은 황해를 낀 경계인 셈이지요.

한반도는 두 개의 국가로 분리되었습니다. 파주는 남쪽의 서부변경에 해당합니다. 파주의 핵심은 한반도의 가운데를 횡단한 한강과 임진강이 만조시에 역류하는 바닷물과 만나는 교하에 있습니다. 이질적 물이 자연의 운동에 따라 자연스럽게 교류하는 장엄한 장면이 펼쳐집니다.

 

 

경계, 경계인, 주변인

경계에 대한 설명을 해보겠습니다. 우선 경계는 두 영역의 분리를 의미합니다. 단절이지요. 그러나 두 영역의 만남이 이루어지기도 합니다. 둘째는 중앙에서부터 먼 곳입니다. 중앙의 주류의식과 문화와는 다른 양상이 펼쳐지는 곳이지요.

12세기의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방의 코르도바는 서구 문화와 사상이 교류하던 변경이자 중심이었습니다. 이슬람과 기독교가 공존하기도 했습니다. 주류와 비주류가 공존하는 곳이기도 했습니다.

이 시기에 코르도바에는 이븐 루슈드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개인과 이성을 넘어선 집단적 지성의 환희를 느껴야 한다고 주창했습니다. 생각한다는 것이 사는 것이자, 우주와 결합하는 것이라고 갈파했습니다. 인간은 신의 의지에 복종해야 하므로 마음대로 생각하는 것은 죄악으로 여겨지던 시대에 천둥과 같은 소리였습니다. 그의 외침은 이성 탄생의 선구가 되어 약 400년 후, 르네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Cogito, ergo sum).’라는 선언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경계에서 나온 인류해방의 목소리였습니다.

경계, 변경, 접경이라는 용어를 구분하지 말고 생각해봅시다. 노무현 시대로 기억합니다. 민스터대학의 교수이자 재독사학자 송두율이 귀국하여 파란을 일으켰습니다. 경계인의 사색이라는 저서를 낸 그는 북한을 다녀왔으며, 북한정권에 충성맹서를 했다고 혹독한 비판을 받았습니다. 어지간한 노무현도 그를 드러내놓고 지켜주지 못했습니다.

경계인(Marginal man)이라는 말은 나치를 등지고 미국으로 간 심리학자 쿠르드 레빈이 한 말입니다. 오랫동안 소속되었던 집단을 떠나 다른 집단으로 옮겼을 때 원래 집단의 사고방식이나 행동양식을 버릴 수도 없고, 새로운 집단에도 충분히 적응되지 않아 어정쩡한 상태에 놓인 사람을 가리킵니다.

교육학에서는 주변인이라고 합니다. R E Park는 둘 이상의 갈등적, 사회문화적 체계들 속에서 다양한 가치를 내면화시킴으로서 어느 하나의 가치에도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규정했습니다. 문화적 잡종(Ultra hybrid)라고 했지만 진정한 통합의 주체이기도 합니다.

   

경계의 두 번째 통합공간, 황해

남북의 경계인 파주에서 첫 번째 통합을 이룬 물이 황해로 흘러가 산동까지 닿습니다. 한반도, 산동반도, 요동반도의 사이에 있는 황해는 두 번째 통합 공간이어야 합니다.

조선시대 성리학 논쟁에서 핵심은 이()와 기()의 관계에 대한 인식이었습니다. 이는 궁극적이자, 불변의 원리이자, 윤리적 이상이므로 순수성을 중시합니다. 기는 현상이자, 가변적이자, 욕망의 원천이므로 이질성을 중시합니다.

대부분의 성리학자들은 이로 기를 통제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순수성이 이질성보다 중요하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오랜 당쟁의 내면에는 이러한 사상적 견해차가 있었습니다. 아시다시피 파주에는 율곡 이이, 우계 성혼, 구봉 송익필, 송강 정철과 같은 당대 명사들의 흔적이 짙습니다. 이들의 같음과 차이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자세히 설명하겠습니다. 그러나 파주가 조선중기 사상계에 강력한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입니다.

 

교하는 이질적인 요인들이 융합하는 곳

교하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중국여행을 떠났습니다. 교하는 이질적 요인들끼리의 융합이 이루어지는 곳이고, 파주는 그것이 펼쳐지는 마당입니다. 파주정신을 가다듬어보자는 것이 저에게는 중요한 일이 되었습니다.

경북 상주가 고향인 저에게 파주는 생소한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10년 넘어 살았던 곳이고, 저와는 많은 인연이 쌓인 곳이므로 제2의 고향입니다. 그러나 저도 결국은 경계인입니다. 경계인이므로 현지인이 생각하지 못하는 것을 떠올릴 수 있고, 보지 못하는 것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할 수도 있습니다.

이탈리아반도의 피렌체에서 유럽을 바꾼 르네상스운동이 시작되었던 것처럼 한반도의 파주에서 새로운 운동이 시작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교하에서 융합된 물이 황해로 흘러가 동아시아의 내해를 이룬 것처럼, 파주정신이 황해 연안에 확산되어 새로운 해방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합니다.

 

묵개 서상욱 : 역사칼럼니스트 관인학사 강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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